**1882년 ‘중국인 배제법령(Chinese Exclusion Act)’**에 의해 일본인들이 대체 노동자로서 1885년부터 대규모 이민이 발생했습니다.
중국인들의 대안으로 일본인들을 들여왔으나 집단 태업으로 인해 점점 비난의 대상으로 전락했고 1900년부터 1905년 사이 일본계 이민 노동자들이 34회의 파업을 행하자 농장주들은 일본인 노동자들을 견제할 세력으로 한인 노동자 수입을 적극 추진했습니다.
하와이 이민 과정에서 주요한 역할을 한 인물은 바로 미국 공사이자 선교사인 **알렌(Allen)**과 한국인의 하와이 이민 사업권을 관할한 데쉴러(Deshler) 입니다.
<aside> 📰 구인 포스터: 하와이 이민 고시문(1903) 발췌 ”하와이는 기후가 극심한 더위와 추위가 없고 무료 교육을 받을 수 있으며 일년 내내 어떤 절기든지 직업을 얻기가 용이하다.”
※출처: <기록으로 보는 재외한인 역사: 아메리카>
<aside> 💡 하와이와 관련된 소문: ”하와이는 나무에도 돈이 열린다.”
</aside>
</aside>
<aside> 📰 『하와이언 스타』 1903년 1월 13일자, 하와이 현지 신문 보도 中 ’이전에도 한인 이민이 있었으나 대여섯 명 정도였다. 이번에 102명이 집단으로 온 것은 아주 특이하다. ‘
해당 기사는 한인 노동자 도입이 노동자 부족 문제를 해결하는데 큰 실마리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보도했습니다.
</aside>
<aside> 📰
카우아이섬 콜로아 농장에서 일했던 이홍기 曰: ’나는 4시 30분에 일어나 아침을 먹었다. 나는 오후 4시 30분에 일을 마치고 30분간 점심을 먹었다. 하루 67센트를 받고 10시간 일을 했다. … 십장은 하와이 말로 ‘루나’라고 했는데, … 그는 우리를 소나 말로 다루었다. … 이름을 쓰지 않고 번호를 대신 썼다. 보통 미혼인 남성은 4명이 한 방을 썼다.’
※출처: <기록으로 보는 재외한인의 역사: 아메리카> (p. 46)
</aside>
<aside> ✅ 하와이 이민에 대한 ‘여행권’ 발권 금지 임금 미지불, 정부 내 이민 반대 세력, 영사관 부재 등을 이유로 여행권 발권을 금지했으나 실제로는 하와이에서 한인 노동자와 일본 노동자의 경쟁을 막고자 일본 측에서 압박을 가한 것으로 보입니다.
<aside> 📰 『하와이언 스타』 1906년 8월 7일자, 하와이 현지 신문 보도 中 ’현 규정하에서 농상공부 대신의 허가나 동의 없이 어느 한국인이든 어떤 나라에도 근로취업을 목적으로 하는 이민을 갈 수 없다. (…) 농상공부 대신의 관할하에 있다는 것은 전적으로 일본 정부의 통제에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aside>
</aside>
<aside> 🔙 ① 하와이
</asid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