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side> 💡 브라질 최초 이민자는 1918년 배편으로 현지에 무단 입국한 박학기입니다.
이후 1926년 이중창 등 3명, 1931년 김영두 등 일가족 6명, 1956년 반공포로 50명 등이 있습니다.
※출처: <브라질 한인 50년사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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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side> 💡 1920년대 일본 국적으로 8명의 한인이 브라질로 이주했습니다. 그 중에서 김수조는 1920년대 후반 일본의 ‘모범 케이스’ 이민으로 온 이주자 중 하나로, 1963년에 브라질로 집단 농업이민을 중개하는 역할을 수행했습니다.
※출처: <기록으로 보는 재외한인의 역사: 아메리카> (p.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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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9년 한-브라질 수교를 시작으로 중남미 국가들과 외교관계를 맺었습니다.
한국 정부는 이민사업을 국가정책의 하나로 채택하여 강력히 추진했습니다.
이와 별도로 예비역 대령, 정인규는 한백진흥공사 이민기관을 설립해서 민간 차원에서 브라질 이민을 모집했습니다.
1962년 1월 5일, 15명 문화사절단을 이끌고 브라질로 갔고 해외이주법 공포와 더불어 본격적인 브라질 이민이 성사되었습니다.
<aside> 💡 농지 사전 준비대 브라질 이민 장려 정책에 따라 100여 명의 한인들이 치차렌카 호 (Tjijalenkea)에 승선하여 1962년 12월 18일 부산항에서 출발합니다.
※출처: 한인이민사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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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라질에 도착한 한인들은 키차를 타고 마라카투(Maracatu) 농장으로 이동하게 됩니다.
그러나 농장의 토지 소유권 문제가 불명확해지면서 이민 사기로 밝혀졌고 한인들은 새로운 곳으로 터전을 개척해 나갔습니다.
최초 이민 형식은 농업 이민이었지만 이주자 대부분은 사무직 출신이었고 열악한 환경과 어려움에 적응 하지 못하고 대부분 도시로 재이주하게 되었습니다.
브라질 유력 일간지, 1962년 2월 12일자 『오 글로보』에 실린 기사: “브라질 전경을 바꿔놓을 한국인”
<aside> 🔖 백옥빈 여사의 이민 일기 中
”이런 놀이를 하면서 이 배는 적도를 몇 번 지났다는 기록을 세우게 되고 선객들에게 지루함을 잊게 하고 원기를 넣어 주는 것이다. 나는 일생에 한 번 있을 적도제에 참례하지 못하여 못내 아쉽다.”
1963~1965 브라질로 이민을 가는 선상에서 적도제(적도를 지날 때 지내는 의식)를 담은 사진 ※출처: 국가기록원
1963~1965 브라질로 이민을 가는 선상에서 적도제(적도를 지날 때 지내는 의식)를 담은 사진 ※출처: 국가기록원
2014년 4월부터 6월까지 대한민국역사박물관이 주한브라질문화원과 공동으로 「브라질 속의 한국인 (Coreanos no Brasil)」을 주제로 특별전을 마련했습니다. 1963년 당시 브라질 첫 이민자 중 하나였던 백옥빈 여사의 일기 내용을 바탕으로 개최가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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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side> 🔙 브라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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